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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1888
한자 宗敎
영어의미역 Religion
분야 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장영복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신이나 초자연적인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삶에 대한 의미를 찾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인류는 고대로부터 자연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하늘과 태양·바위·나무 등을 숭배하는 원시신앙이 싹트게 되었고, 특히 하느님과 태양을 섬기어 왔다. 우리 민족도 일찍이 원시신앙 형태로 샤머니즘이 있었다. 개인 신앙과 마을 공동 신앙으로 나눌 수 있으며, 사제(司祭)인 무당이 영(靈)과 인간을 연결해 준다고 믿었다. 민간신앙으로 성황당(城隍堂)·당산(堂山)·거수(巨樹) 같은 곳에서 복(福)을 빌었고, 숭조사상(崇祖思想)과 함께 풍수신앙(風水信仰)과 점술(占術)·무속신앙(巫俗信仰)이 있었다.

칠곡 지역에는 신라시대에 불교가 들어와서 사찰이 세워지고 포교되었음을 오래된 사찰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오랫동안 성쇠를 겪으면서 변천되어 왔다.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된 후 누구나 자유롭게 신앙을 갖게 되었다. 칠곡 지역은 동명면 한티지천면 신나무골의 천주교 성지를 비롯하여 가실성당이 세워진지가 100여년이나 되었으며, 영남 지방 천주교의 요람지라 할 수 있다.

기독교는 1884년에 언더우드, 아펜셀러 두 목사에 의해 전도되었으며 우리나라 개화사상의 중추가 되었고, 교육 의료사업과 근대화에 공헌을 하였다. 칠곡 지역은 고유 민간신앙과 무속 등이 상존하고 외래 고등 종교인 불교를 비롯해서 천주교·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가 분포되어 있다.

[원시신앙]

원시인의 생활 영역은 크게 의식주 생활과 신앙생활로 구분된다. 당시의 생활이 자연에 지배받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경외가 신앙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생산과 운명을 지배하는 자연숭배와 함께 영혼불멸 사상 및 무속 사상, 조상숭배 사상 등이 아직도 칠곡 일부 지역에 남아 있다.

[토속신앙]

토속신앙은 민중 사이에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종교이며, 넓은 의미로 볼 때 가신신앙(家神信仰)·속신(俗信)·주술(呪術)·동제(洞祭) 등이 있다. 토속신앙은 인간 본연의 종교적 욕구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자연 종교성을 가지며, 계시(啓示)·교조(敎條)·교리(敎理) 등이 일반 종교와 구별 되며 토속신앙의 중요성은 체계성을 가지고 이어진 것이 아니고 조직적이 못한 점에서 오랜 역사성과 다수 민중과의 밀착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칠곡 지역의 토속신앙은 인류 생활과 함께 시작되어 오늘날에는 현대문명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는 인간의 힘이 아주 무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천신(天神)·산신(山神)·당신(堂神)같은 선신(善神)의 도움을 받아 묵은 살(煞-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을 풀고 복덕을 빌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부락의 천재와 흉년, 질병, 맹수로부터의 피해를 막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와 자손의 번창, 농사의 풍년, 가축의 번성을 누리려는 공동체 의식에서 발생한 부락제(部落祭 洞祭)는 아직도 여러 마을에서 연례행사로 시행되고 있다.

[불교]

불교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 가빌라국 태자 실달다(悉達多)가 중생을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사고로부터 해탈시키려 고행 끝에 부처가 되면서 만들어진 종교이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 특히 사찰과 탑들이 많이 세워졌으며 정교한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우리 고장은 옛 신라 땅으로 불교문화가 찬란히 꽃피었던 곳이다.

칠곡 지역에는 신라시대 창건된 절과 탑이 많으며, 특히 보물로 지정된 불교 유적이 송림사(松林寺) 5층전탑[보물 제189호], 기성동 3층석탑[보물 제510호], 선봉사지(僊鳳寺址) 대각국사비(大覺國師碑)[보물 제251호], 노석리 마애불상군(摩崖佛像群)[보물 제655호] 등이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개인에 의해 지어진 절이 많아지고, 신자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교파도 다양하였다. 불교가 칠곡 지역에 전래되어 번창하였다는 것은 현재 남아있는 그 유적들로 알 수 있다.

송림사는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 창건되었으며 경내에 있는 5층전탑은 보물 제189호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볼 수 있는 벽돌로 만든 탑이다. 1959년 해체 복원할 때 탑신에서 나온 유물이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 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금곡사(金谷寺)는 신라 선덕여왕 7년에 금란대사(金蘭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도덕암은 고려 광종 19년에 중수한 것을 보면 신라시대 지어진 암자로 추정된다. 선봉사지의 대각국사비에 정교하게 새겨진 전서(篆書)와 봉황(鳳凰), 당초문(唐草紋)은 금석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기성동 삼층석탑기산면 노석리에 있는 마애불상군은 그 기법이 정교하다 할 수 있다.

[천주교]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종교로서가 아니라 서학으로서 전래 되었다. 더욱이 그것은 서양 문물이 전래된 경우와 같이 북경을 통해 사신의 교류로 전래된 천주교는, 주로 학자들의 호기심이나 학문으로서 연구하게 되었으므로 이를 ‘서학(西學)’ 또는 ‘천주학(天主學)’이라 불렀다. 주로 당시의 정권에서 물러난 남인학자들에 의해서 서학 연구가 진전됨으로서 점차 신앙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칠곡 지역의 천주교는 왜관 달오[현 왜관읍 왜관리]에 살았던 성섭(成涉)[1718~1788]이 실학을 연구 하다가 신자가 되었다고 전해지므로, 1784년 한국천주교 초창기부터 포교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15년(순조 15)에는 청송에 살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참형을 당할 때, 그 가족들이 칠곡 지천면 신나무골동명면 한티에 숨어 살아 이곳에 신자촌이 형성되어 이후 활발한 포교 활동을 하였다. 1860년(철종 11)에는 검거령이 내려지자, 이곳 신자들이 대구 죽전 등으로 흩어졌다가 1886(고종 23) 한불조약의 체결을 전후하여 신나무골한티마을을 중심으로 다시 선교 활동이 전개되었다. 그 후 1894년(고종 31) 가실성당, 1928년 왜관성당, 1968년 신동성당, 1978년 동명성당, 1979년 석전성당에 이어 약목성당, 인평성당, 중리성당이 설립되어 칠곡 지역에는 8개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또한 6·25전쟁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설립되어 수도원에서 칠곡군, 성주군, 금능군, 상주군, 문경군 등 6개 군 지역 본당을 관할하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왜관관목대리구로 지정되어 교세가 더욱 확장되었다. 현재는 칠곡 지역 천주교회 8개 중 왜관·가실·석전·약목·신동 등 5개 성당은 수도원 소속 신부가 사목하고, 동명·인평·중리 등 3개 성당은 대구대교구 소속 신부들이 사목을 하고 있다.

[개신교]

우리나라에 신교인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882년 한미우호조약의 체결로 전도가 자유스러워지자 1884년 미국 선교사 알랭이 장로교를 처음 전교하였고, 이어 언더우드가 입국하였다. 한편 감리교는 1885년에 아펜셀러가 전해주었으며 포교 사업의 일환으로 의료기관을 설치하여 국민의료보건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86년 배재학당을 효시로 현대 교육을 시작하여, 스크랜톤 부인이 이화학당을 세우고, 숭실학당, 연희전문 등 신(新)교육기관이 잇달아 세워져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기독교의 사랑과 평등사상은 조선사회의 봉건적 윤리관과 가치관에 큰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1920년부터 장로교와 성결교에서 교회진흥운동을 전개하여, 교회부흥운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교육, 의료, 사회복지 사업에도 획기적인 진전을 거듭해 나갔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륙 침략에 앞서 이른바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을 펼쳤으며, 1930년부터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였다. 이러한 것이 1935년에 와서는 외국선교사들에게도 강요하였으나,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거절하자 일본은 많은 교회와 학교를 폐교시키고, 2,000여 명의 교회지도자 투옥, 50여 명의 교직자 순교, 200여 교회의 폐쇄 등 기독교는 일대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탄압을 받던 한국 개신교회는 1945년 광복을 맞아 조선교단이 해산되고 교파별 각 교회가 재건되었다.

1950년 전쟁의 발발로 한국의 개신교는 또다시 수난을 겪게 되었다. 해방 후 재건되어가던 한국 교회는 지도자의 과반수를 상실하였고, 교회의 대부분이 소실 파괴되는 치명상을 입었다. 칠곡 지방의 개신교도 1953년 휴전이 되자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6·25전쟁의 비극적인 체험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교회로 향하게 하였고 재기불능처럼 보였던 교회는 놀라운 속도로 복기되어 오늘에는 자연마을마다 교회가 세워질 만큼 부흥되었다. 현재 칠곡 지방에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교회가 20여개,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 교회가 23개,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교회가 2개, 그 밖의 예수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기독교 한국 침례교회,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세계기독교 통일신령교회 등이 각각 한 두 곳씩 설립되어 있다.

[기타 종교]

1985년에 설립한 여호와의 증인과 1992년에 설립한 동명천궁 그리고 1977년에 설립한 한얼교가 각각 한 곳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3.03 내용 중 문화재 명칭 변경 3층석탑->삼층석탑 노석동 마애불상군->노석리 마애불상군
2013.09.03 [개신교] 수정 <변경 전> 배제학당 <변경 후> 배재학당
2011.05.19 내용 윤문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특히 사찰과 탑들이 세워져 정교한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 특히 사찰과 탑들이 많이 세워졌으며 정교한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이용자 의견
배**** 배제학당이 아니라 배재학당입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3&cid=404&categoryId=404
  • 답변
  •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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