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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권회복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799
한자 朝鮮國權恢復團
영어의미역 State Power Recovery Group
이칭/별칭 조선국권회복단 중앙본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
설립연도/일시 1915년 음 1월 15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19년 6월연표보기
설립자 윤상태|서상일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칠곡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 단체.

[개설]

1915년 2월 28일에 달성친목회의 회원 서상일 등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부호·중산층·계몽주의자·신학이수자·유생들이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의 독립운동 세력과 만주 독립운동 단체,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과 상호 연결되어 국내·외 독립운동을 지원한 비밀결사단체이다.

[활동사항]

조선국권회복단은 1915년 음력 1월 15일 결성되어, 동년 7월 풍기의 광복단과 연결되어 대한광복회를 결성하면서 조직의 활동 영역이 넓어졌고, 경상남도 일원에서 활동하던 대동청년단과 제휴였다. 1919년 6월 조직의 전모가 노출될 때까지 국권 회복 운동을 지원하였다. 조선국권회복단은 국내에서 독립운동 세력을 확장하고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하여 최후로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조선국권회복단은 해외 독립운동 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의 양성을 위한 청장년의 모집에 힘을 기울여 1915년 7월 15일 대구권총사건(大邱拳銃事件), 1919년의 3·1운동 주도,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 15,000원 송금, 1919년 유림단의 독립청원사건 지원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국권회복단의 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칠곡 출신은 신상태(申相泰)·이수묵(李守黙) 등이 있으며, 1916년 6월 칠곡의 부호 장승원에게 군자금 요구와 1917년 8월 장승원 암살사건 등은 대한광복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1910년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해외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와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후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여 1919년 3·1운동과 1920년대 독립운동의 원류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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