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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01
한자 大韓光復會
영어의미역 Korea Liberation Corp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
설립연도/일시 1915년 7월 15일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18년 초연표보기
설립자 박상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의 친일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독립운동 단체.

[개설]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1915년 1월 15일 대구에서 윤상태(尹相泰)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이 1915년 7월 15일 통합하여 결성하였다. 총사령은 박상진(朴尙鎭), 부사령은 이석대(李奭大)[일명 李鎭龍]이다. 부사령은 만주에 상주하며 독립군 양성을 담당하였는데, 1917년 부사령 이석대가 피체된 뒤 김좌진(金佐鎭)이 부사령이 되었다.

[설립목적]

대한광복회의 목적은 그 강령(綱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①자금의 수합 ②독립군의 양성 ③국내 100개 소에 각기 1만 원의 기금으로 잡화상을 설치하여 연락 기관으로 운영 ④무기의 비축 등의 준비를 통해 혁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즉, 독립전쟁을 최후의 목적으로 삼았다.

[주요활동]

대한광복회의 조직은 대구의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를 본부로 하고, 국내 각처에 곡물상을 설치하여 연락처로 삼았다. 서울, 황해도 해주, 만주 안동에는 여관, 만주 장춘에는 이관구가 설치한 삼달양행(三達洋行)과 상원양행(尙元洋行)을 연락 거점으로 삼았다. 그 구성원은 채기중(蔡基中), 유창순(兪昌淳), 유장렬(柳璋烈), 한훈(韓焄), 강순필(姜順必;姜秉洙), 김병렬(金炳烈), 정만교(鄭萬敎), 김상옥(金相玉), 정운홍(鄭雲洪), 정진화(鄭鎭華), 황상규(黃尙奎), 이각(李珏) 등이며, 그외 우재룡(禹在龍), 양재안(梁濟安), 권영만(權寧萬), 김한종(金漢鍾), 엄정섭(嚴正燮), 김경태(金敬泰) 등이다.

대한광복회의 주요 활동은 군자금의 모집으로 부호들에게 배당금 통고문을 발송하여 의연금을 받았다. 그러나 군자금 모집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군자금 모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친일 부호들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대한광복회는 1917년 말부터 1918년 초에 걸쳐 대표적인 친일 부호 경상북도 칠곡군의 장승원,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 전라남도 보성군의 양재학, 낙안군의 서도현 등을 처단하였다.

그 중 전국적으로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 장승원 암살 사건과 박용하 암살 사건이다. 장승원 암살 사건은 박상진이 1916년 권성욱을 시켜 2차에 걸쳐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후, 1917년 11월 10일 풍기광복단의 채기중·강순필·유창순으로 하여금 암살하도록 하였다. 장승원은 한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던 중, 당시 평리원장 허위(許蔿)에게 의병자금 20만 원을 헌금하기로 약속하였으나, 그 뒤 허위의 제자인 박상진이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자 처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외 1915년 11월 17일 경주 광명리에서 일본인이 징수하여 마차로 운송하던 경주·영일·영덕 등 3군의 세금 8,700원을 우재룡·권영만 등이 습격하여 탈취한 사건과 황해도의 회원 성낙규·조선환·이관구 등에 의해 계획된 1916년 음력 6월의 조선 총독 암살 계획, 영주의 대동상점 사건 등이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대한광복회는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이 통합되어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진 혁명 단체로서 공화주의를 그 이념으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지원하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무력 투쟁을 통해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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