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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878
한자 古建築
영어의미역 Korea Traditional Architecture
이칭/별칭 고건축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집필자 이호열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의 전통적 건축 역사와 현황.

[개설]

고건축이란 전통사회에서 형성 발달해온 건축을 말한다. 한국의 고건축은 시간적으로 조선 말기까지의 전통사회에서 지었던 건축을 말하며, 공간적으로는 우리 민족이 활동했던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건축을 지칭한다. 고건축은 각 시대의 사상, 종교, 정치제도 등의 인문·사회적 배경 및 기후, 지형, 산출 재료 등의 자연적 조건에 영향을 받으며 발달해 왔다. 불교를 신봉한 4세기말 이후의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고려시대에는 불교 건축이 발달했으며, 성리학을 숭상한 고려 후기 이후부터 조선시대에는 유교 건축이 크게 발달하였다. 칠곡군에는 임진왜란과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의 피해를 입어 남아 있는 고건축의 수가 타 군(郡)에 매우 적으며, 질적으로 우수한 고건축물도 소수에 불과하다.

[칠곡군의 불교 건축]

칠곡군 내 불교 건축으로는 동명면송림사(松林寺), 약목면용화사(龍華寺), 왜관읍흥국사(興國寺) 등이 있으며, 절 터로는 11세기에 조성된 약목면 남계리의 정토사지 등이 있다. 대표적인 불교 건축은 동명면 송림사의 5층전탑과 대웅전기성동 3층석탑이다. 송림사는 544년(진흥왕 5)에 진(陳)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해서 창건했으며, 그 뒤 1092년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창하였고, 1235년에 몽골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그 후 1597년(선조 30)에 왜병들의 방화로 소실된 것을 1858년(철종 9)에 영추(永樞)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요사채 및 5층전탑(보물 제189호) 등이 있다.

대웅전 정면의 5층전탑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전탑으로, 화강암 기단 위에 벽돌로 5층으로 쌓은 형태로, 5층 옥재부 위에 청동으로 만든 상륜부가 있다. 옥개부는 위로 올라갈수록 들여쌓기 하여 쌓았으며, 상륜부에는 청동제 복발, 앙화, 보륜, 용차, 보주가 동판(銅板)으로 싼 목심찰주(木心擦柱)에 꽂혀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맞배집이다. 이밖에 동명면 기성동 3층석탑[보물 제510호]은 전체 높이가 약 5.2m인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8개의 장방형 돌로 받친 하층 기단 위에 상층 기단을 구성하고 그 위에 탑신을 형성했다. 상층 기단에 우주(隅柱)나 탱주(撑柱) 없이 4면에 큰 안상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칠곡군의 유교 건축]

칠곡군 내 대표적인 유교 건축으로는 지천면 신리사양서당사양서당 강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7호], 창평리녹봉정사[철거됨], 기산면 평복리소암서원(嘯巖書院), 석적읍 중리봉양서원(鳳陽書院)·화산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 북삼읍 숭오리어필각(御筆閣), 약목면 남계리의 숭무사(崇武祠)·신유장군 유적(申瀏將軍 遺蹟)[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 등이 있다.

사양서당은 1651년(효종 5) 한강 정구[1543~1620]가 강학하던 옛 칠곡면 사수동[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던 것을 1694년(숙종 20)에 지금의 장소로 이건한 것이다. 창건 시에는 묘우(廟宇)와 강당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강당인 경희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7호]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은 헐렸다. 강당인 경희당은 이익공 양식의 흩처마 맞배집으로, 평면은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을 두고 좌우 툇간의 전면에 뒷마루를 둔 중당협실형이다. 경회당의 견실한 구조와 짜임새 있는 결구는 조선 후기 서당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 동산재(束山齋)[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03호]는 광주이씨 낙촌 이도장(李道長)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지은 것으로, 경내에는 낙촌정을 비롯 경암재, 소암재, 대문채, 관리사 등이 있다. 중심 건물인 낙촌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며, 경암재는 맏아들 귀암 이원정(李元禎)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1903년에 세운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이밖에 장손 정재 이담명(李聃命)를 봉향하기 위한 소암재와 묘실이 있다. 동산재는 재사와 정자가 일곽을 이루고 있으며, 건축적 위계를 반영한 건축구성과 배치가 특징적이다.

이밖에 석적읍 중리에 있는 화산서당(花山書堂)[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0호]은 1651년(효종 2)의 정묘재란 때 의병장이었던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가 제자를 가르치던 서당이었다. 그 후 사림(士林)의 중론으로 1840년(현종 6)에 현 위치로 이건하고, 사당을 지어 서원 형식을 취했으나 사당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헐렸다. 강당은 1840년(헌종 6)에 지은 초익공 양식의 팔작집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평면은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들인 중당협실형이다. 강당은 구조가 견실하며 익공이나 화반의 형태가 조선 후기 익공계 건축의 형식을 잘 보여준다.

[칠곡군의 주택 건축]

주택 건축으로는 조선 후기에 지은 양반 사대부가인 혜은고택과 묵헌종택이 있다. 왜관읍 매원리 상매마을에 있는 해은고택(海隱 古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5호]은 이동유(李束裕)가 1788년(정조 12)에 지은 가옥으로, 사랑채는 1816년(순조 16)에 건립되었다. 현재 사랑채, 곳간채, 정침 등이 남아 있으며, 정침 우측에는 사당이 있다. 사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집으로, 좌로부터 대청, 사랑방, 문간방, 중문간이 연접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6칸반,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집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안방과 건넌방을 둔 형태이다. 곳간채는 좌측 부분에 온돌방을 들여 아래채의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사당은 이익공 양식의 전퇴를 둔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집이다.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 묵헌종택(默軒宗宅)[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5호]도 조선 후기의 양반사대부 주택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문익공 이원정(李元禎)[1622~1687]의 차남인 이한명(李漢命)[1651~1687]이 지었으며, 사당은 1820년(순조 20)에 5대손인 묵헌 이만운(李萬運)[1736~1820]이 별세 후 유림 공론으로 지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며, 사랑채의 오른편 뒤쪽의 사당은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집이다. 사랑마루와 안채 대청 배면의 판문에는 고식(古式)의 영쌍창을 끼웠던 홈이 남아 있다. 두 창의 가운데 설주를 세운 영쌍창은 보기 드문 고식의 창으로서 건물의 연원이 오래었음을 보여준다.

[칠곡군의 산성과 관아]

가산산성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사적 제216호)으로, 높이 901m에 높은 험한 골짜기를 이용하여 내성·중성·외성을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현재 성문터와 암문·수구문(水口門) 및 건물 터가 남아 있다. 내성·중성·외성은 시대에 따라 따로 축성했다. 1640년에 내성을 쌓고, 1700년(숙종 26)에 외성을 쌓았으며, 1741년에 관찰사 정익하가 중성을 쌓아 완성했다.

성이 완성되면서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가 설치되고 군위·의흥·하양·신녕 지방이 이에 예속되었다. 1741년 중성 축조 때 객사인 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와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砲樓)·장대(將臺) 등이 설치되었다. 가산산성은 행정적이라기보다는 방어를 위한 군사용 성으로 쌓은 것이다. 성문 터에는 홍예문이 남아 있는데, 그 양식이 특수하다. 즉 앞쪽으로만 홍예를 틀고 안쪽으로는 판석을 건너지른 미석(眉石 ) 모양이다. 다른 홍예문도 같은 모습이나 외성의 남문만은 보통 홍예문의 법식을 따랐다. 가산산성은 조선시대 중·후기의 산성으로 성 안에 관아를 설치하여 행정 기능을 겸한 방어적인 산성의 공간구성과 석축 형식 등을 잘 보여 준다. 조선시대 산성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칠곡군 고건축의 특징]

칠곡군에는 몽고 침입을 비롯 1592년의 임진왜란6·25전쟁으로 마을과 우수한 고건축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통일신라시대 전탑인 송림사 5층전탑기성동 3층석탑 등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불교 건축이 남아있다. 대부분의 고건축은 조선시대 중·후기에 지은 것이다. 사양서당 등은 조선시대 유교 건축의 배치 형식과 구조 및 당시의 건축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해은고택묵헌종택은 조선 중·후기의 양반 사대부 주택으로 봉제사(奉祭祀)·접빈객(接賓客) 위주의 공간구성, 남여 거주 공간의 분리 및 안마당과 사랑마당에 면해 안채와 사랑채를 별도 건물로 지은 튼 ‘ㅁ’자형 배치 형식은 당시 주택 건축에 반영된 유교적 생활 윤리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유교 건축과 주택 건축의 간결하고 소박한 건축 수법과 자연미의 강조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건축 미학을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 중·후기에 쌓은 가산산성은 성벽을 3중의 쌓고 성 안에 관아를 설치한 행정과 군사기능을 겸한 산성으로, 각종 시설의 위치와 성벽, 성문의 세부 형식은 조선시대 산성의 구조와 건축 기술의 수준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5.19 내용 수정 북삼면 -> 북삼읍
2011.05.19 내용 수정 석적면 -> 석적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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