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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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남창리 남창마을에서 지냈던 빗신굿. 가산산성을 축조한 이세재(李世載)를 신격화하고 마을의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10년에 한 번 씩 지냈던 별신굿이다. 마을 사람들은 ‘비신’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빗신굿’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1698년(숙종 20) 11월 20일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이세재가 가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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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 전해 오는 가산산성을 소재로 한 생활요. 1639~1640년(인조 17~8)에 처음으로 축성된 가산산성을 제재로 한 노래이다. 하지만 시대적 구분을 하면 최근의 가산산성이 제재가 된다. 옛터에 청사는 없고 장림만 남았다고 하면서도 현대적인 가산산성의 새로운 면모를 노래했다. 새로운 면모로 성곽은 중수되고 폐허된 사찰은 신축되었음을 들었다. 옛 것과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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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가산산성에 설치되었던 지역 방위제도. 가산진관은 가산산성에 설치되었던 지역 방위체제이다. 가산산성은 지금의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동명면 남원리에 걸쳐 있으며, 험준한 한 산지에 위치하고, 남북으로 대로와 접해 있어 내륙 방어의 요충지였다. 1640년(인조18) 내성을 쌓고, 1700년(숙종 26) 외성을 쌓았으며, 1741년(영조 17)에 중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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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 개신교는 캘빈의 장로교, 웨슬레의 감리교를 축으로 그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성서 해석상에 있어 개신교는 일치된 교리로서 교권 해석을 원칙으로 하는 로마 가톨릭에 비해 양심의 자유를 원칙으로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신교는 자유로운 신앙적 선택을 할 수 있음에 따라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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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으로 시집 온 이명득이 지은 관동지방 기행가사. 「금수강산 유람가」의 작가는 이명득[1909~1992]이다. 이명득은 성산이씨로 지천면 신동의 풍산김씨 김병갑에게 출가하였고 택호를 성곡댁이라 한다. 노래의 갈래는 가사로서 기행가사(紀行歌辭)이며 관동지방의 산천 명승지를 단체 유람한 일정과 소회를 담은 점에서 관유가사(觀遊歌辭)이다. 이명득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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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에 걸쳐있는 금오산에 세워진 고려 말기의 산성.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감싸 내·외성 2중으로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내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른 모양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10리나 되며, 험한 절벽에는 따로 성벽을 쌓지 않았다. 외성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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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칠곡군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경상도를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강. 상주의 옛 지명인 상락(上洛) 또는 낙양(洛陽)의 동쪽을 지나는 강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說)과 가락국(駕洛國)의 동쪽을 지나는 강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說)이 있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의 함백산(咸白山)[1,57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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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모심기를 할 때 부르는 노동요(勞動謠). 「모심기 노래」는 토착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발생된 것으로 모심기 노동의 수고를 덜고 박자에 따른 행동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불리는 농업노동요이다. 이앙법이 역사적으로 먼저 발전했던 경상도 특히 칠곡군의 경우 모심는 소리는 두 패의 합창대가 서로 교대창으로 부르는 가창 방식이 발달했다. 이는 전라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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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체계. 방언이란 한 언어가 내적이거나 외적 변화에 의해 지리적·시간적·계층적으로 분화되었을 때 공간·시간·계층의 언어 체계를 총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방언이라고 하면 일정한 지역이나 사회 계층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의 하위 형식을 가리키는 말로 독자적인 특징을 갖는 언어 체계를 가리킨다. 즉 방언은 지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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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아기를 어를 때 부르는 노래. 『칠곡군지』에 소개된 아기 볼 때 부르는 노래는 3편이다. 첫 번째 노래는 “둥글둥글 모개”로 시작하는데 노래의 제목은 없다. 다만 노래의 소재가 모과인 만큼 「모과노래」라고 해도 무방하다. 두 번째로 「불미노래」는 지역에 따라 제목을 ‘불무노래’라고도 하고 ‘풀무노래’라고도 한다. 주된 소재가 ‘풀무’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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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재 동명면 남원리 일대에서 ‘가산산성 별신굿’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비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다. 이 ‘비신’을 행한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는데, 어떤 사람은 이세재가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당시 관찰사를 모시고 고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 치러진 것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산천왕님을 모시고 10년에 한 번씩 했던 굿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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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 이담명의 영사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이담명(李聃命)[1646~1701]이 굶주린 백성을 진휼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이담명의 자는 이노(李老), 호는 정재(靜齋),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조선 숙종 때의 명신으로 1670년 문과에 급제하고 전라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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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5년 1월 12일 칠곡군 약목면 덕산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군자금을 모아 상해로 가려다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치른 후, 1925년 다시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지령서를 부호(富豪)들에게 배포하고 모금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받았다. 1920년 북만주(北滿洲)로 가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협의하고 돌아와, 군자금 조달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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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소비자와 생산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교환·거래하는 장소. 시장이란 교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를 뜻하는데, 한국에서는 시장을 장시(場市) 혹은 장(場)으로 불렀다. 오늘날 재래시장 혹은 정기 시장과 비슷한 형태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은 장문(場門)이 발생하여 농산물의 교환·판매가 이루어졌던 조선 시대 제9대 성종(成宗) 초까지 거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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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식품 섭취, 식습관 및 음식 문화 등에 관련된 행위와 모습. 칠곡 지역은 대규모 소비지를 접하고 있으므로 주곡농업 외에 근교농업으로 무, 배추, 오이 등의 채소가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양계, 한우, 젖소의 사육도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친환경 농업을 통해 재배한 칠곡군의 청정 쌀, 참외, 포도 등이 유명하다. 또한 칠곡 지역은 낙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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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지역에 있었던 천주교 신자 박해 사건. 조선 후기 천주교 전례는 봉건적 유교 도덕과 사회규범에 대항하는 사상적 반항, 이념적 도전이었다. 이에 조정에서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천주교 박해 사건이라 한다. 조선 천주교 100년 박해 중 1815년(순조 15) 을해박해 때 성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순교자 김종한[안드레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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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소리가 늘상 울려 퍼지던 선비마을 각산1리에서 1년 중 딱 하루, 아이들이며 부녀자들의 웃음소리가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가도 꾸지람을 듣지 않은 날이 있었다. 모든 것이 용인(容忍)되던 그 날은, 음력설을 새고 정월 대보름이 되기 전의 딱 하루였단다. 1년 중 제일 큰 행사인 명절을 보내고 정월 대보름이 되기 전, 그러니까 농촌사회에서는 농한기에 해당하여 부녀자들이 제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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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데 사용한 사회 관습적인 기호 체계. 칠곡 지역의 말은 인접한 성주, 고령, 달성 지역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넓게는 경상북도 지역의 말과 언어적 특성을 공유한다. 칠곡 말에서는 성조가 의미 변별 기능을 하고 있으며, 기본 단모음이 6개로 발음상 다른 지역과의 차이가 크다. 칠곡 말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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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칠곡군의 역사. 칠곡군은 지리적으로 영남 대로(嶺南大路)와 낙동강 수운의 교통 요충지인 동시에 군사적 요충지이다. 지금은 경부 고속 도로, 중앙 고속 도로, 고속 도로, 일반 국도, 지방도, 시군도 등이 서로 연결되어 낙동강을 건너 전국으로 통하며, 경부선 철도가 남북으로 관통하는 사통팔달의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칠곡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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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과 지천면 일대에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인 신자촌. 칠곡 지역의 신나무골[지천면 연화리]과 한티[동명면 득명리]와 성지골[동명면 송산리]에는 1815년 을해박해 때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일월 산중의 우련전과 곧은정에 살던 신자들이 배교자의 밀고로 33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후 대구의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와서 다시 문초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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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와 미래의 발전 전망.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어느 지역이나 나름대로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전이나 기록물에 의하여 그 역사를 알 수 있고 한편으로는 선조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을 통하여 알 수도 있다. 그럼 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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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칠곡군을 포함한 남부 해안 지역 등에 일본인 사신과 교역자들이 머물며 외교 및 물자를 교역하던 장소. 조선 시대 일본인이 조선에서 외교·통상을 하던 무역처·숙박처·접대처로서의 기능을 가진 곳을 왜관(倭館)이라 하였다. 칠곡군 왜관의 명칭은 왜관 언저리에 조선 성종 때부터 낙동강 하류에서 뱃길을 따라 올라온 왜물(倭物)을 서울로 실어가기 전에 보관해 두었던 창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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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 칠곡군에는 보물 6점, 사적 1점, 천연기념물 1점 등 국가 지정 문화재 8점과 유형 문화재 6점, 기념물 3점, 민속 문화재 1점 등 도 지정 문화재 10점, 문화재 자료 9점, 등록 문화재 2점 등 모두 29점의 문화재가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 지정되어 있지 않은 유물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칠곡군 왜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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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자위군(自衛軍)이자 민군(民軍). 의병의 역사에 있어서 대표적인 것은 임진·병자 양란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이다. 특히 조선 말기 의병은 항일 독립운동의 원류인데, 칠곡·인동 지역에서는 산남의진에 참여한 장준호·장성우·손기찬(孫基瓚) 등이 있다. 조선 말기 의병은 1895~1896년의 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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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5년 1월 29일 칠곡군 왜관면 석전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의 내몽고 지역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 모집에 참여하여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파리장서(巴里長書)를 가지고 중국에 가서 활동하던 김창숙은 독립운동의 활로를 열 방안으로, 내몽고(內蒙古) 지역황무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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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칠곡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일본은 전쟁에 육군 15만, 수군 9천여 명을 투입하여 7년간 조선을 유린하였다. 일본의 침략은 1592년 4월 14일 부산성 침략에서 출발하였다. 일본군의 선봉대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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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의 장탁원 등이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은 칠곡군 인동면 출신인 장탁원이 활동한 독립운동단체로 3·1운동 이후인 1920년 9월에 경상북도 김천에서 비밀리에 조직되어 1922년에 일제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받을 때까지 활동한 단체이다.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의 주요 인물은 김찬규(金燦奎), 신태식(申泰植), 이응수(李應洙), 장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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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의 광주이씨 이원정의 종손 이필주 가(家)에서 보관해 온 조선지도 필사본(筆寫本). 지도는 18세기 초에 제작된 옛 지도로 제작자는 미상(未詳)이다. 책으로 묶어진 옛 지도본 대부분이 목판본이어서 검은색 단색 인쇄본인데 비해, 「조선팔도지도」는 필사된 채색본으로 남아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지도는 칠곡의 광주이씨인 판서공 이원정(李元禎)의 종손 이필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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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여러 종교들 중 하나로서 개신교와 대비하는 구교(舊敎). 천주교는 가톨릭교회라고도 한다. 여기서 ‘천주’라는 말은 ‘하느님’을 뜻하고, 가톨릭은 ‘보편적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카토리코스(katholikos)’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보편성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하다는 뜻이다. 오늘날 세계 60억 인구대비 종교인 비율은 대략적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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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산성(山城).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192m]에서 시작된 산맥의 서북쪽 15㎞ 지점의 끝 부분에 위치한 가산(架山)은 평정봉으로서 산정부에는 상당히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 정상에 위치한 가산산성은 서북쪽으로 천생산성과 유학산(遊鶴山)[해발 839m]에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다부동에 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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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산성(山城). 칠곡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 외 11필지에 위치하는 조선 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사적 제216호로 지정되었으며,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산성은 해발 901.6m의 천험(天險)의 가산 골짜기를 이용하였고 내·중·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사대문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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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에서 근대 교통수단이 발달되기 전까지 대량의 물자 수송을 했었던 낙동강 수운. 영남 내륙 지역의 농수산물의 교역장으로서 칠곡군의 중심을 남북으로 관류하는 낙동강 연안은 나루터, 조선 초에 왜구들의 금구책으로 교린정책을 쓰면서 칠곡군 낙동강 유역에 설치했던 왜관, 6·25전쟁 때 조국의 운명을 지켜낸 천혜의 요충지 낙동강의 교두보와 관련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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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칠곡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제도. 1593년(선조 26)경에 경상도 감영이 지금의 칠곡인 팔거현에 일시 옮겨온 적이 있었고, 1640년(인조 18)에 가산산성이 축조되면서 칠곡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경상도의 중심으로서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이 아니라 감영인 대구를 방비할 수 있는 천연적 요새이기 때문에 도호부가 될 수 있었다. 1643년에 경상감사 임담(林墰)이 “칠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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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칠곡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제도. 팔리현은 경상북도 왜관읍·지천면·동명면·가산면 일대와 대구광역시 북구 칠곡 일대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명칭이다. 팔리현의 원래 명칭은 팔거리현[북치장리(北恥長里) 혹은 인리(仁里)라고 불리기도 함]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에 팔리현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당시 수창군(壽昌郡)[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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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익지(益之), 호는 유천(柳川), 시호는 문익(文翼). 우량(友諒)의 삼십일세손 한지원(韓智原)에게 만(蔓)·간(蕳)·난(蘭)·영(英)이라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 한난(韓蘭)을 시조로 하는 청주한씨이다.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 닥실[저곡]으로 입향한 한방도(韓方道)의 후손이다. 1589년(선조 19)에 별시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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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칠곡 지역에 있었던 천주교 신자 박해 사건. 천주교 전례는 봉건적 유교 도덕과 사회규범에 대항하는 사상적 반항, 이념적 도전이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기본 질서를 부인하는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였는데 이를 천주교 박해사건이라고 한다. 조선 천주교 100년 박해 중 1815년(순조 15) 을해박해 때 성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순교자 김종한[안드레아] 가정을 비롯하여, 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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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인 신자촌. 천주교 전례는 봉건적 유교 도덕과 사회규범에 대항하는 사상적 반항이며, 이념적 도전이어서 수차례 박해가 있었다. 한티 성지는 조정으로부터의 박해를 피해 한티마을에 모인 수십 명의 신자들이 무더기로 처형된 비극의 현장으로 현재 군데군데 신자들의 묘가 산재해 있다. 한티마을에 언제부터 신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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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중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장경우가 세운 서당. 인동(仁同) 출신,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1581~1656]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태래(泰來)이다. 아버지는 장내범(張乃範)이며,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았다. 임진왜란 후인 1608년에는 학교를 부흥시키고자 『학교의식』을 지어서 학교 교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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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학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때 순교자들을 처형하던 장소. 천주교 전례는 봉건적 유교 도덕과 사회규범에 대항하는 사상적 반항, 이념적 도전이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기본질서를 부인하는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를 하였으며 흙다리골 성지는 신자들을 처형하던 장소이다. 1869년 조선 천주교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조정의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